나는,
현실의 안온을 안다. 시끄러운 생활 소음으로부터 멀어져 다른 공간에 나 혼자 뚝 떨어진 느낌을 주는데, 그것이 꼭 미들 스쿨 시절 자주 갔던 성당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일을 하고 있을 바쁜 오전시간, 예배당에 홀로 앉아있으면, 들리는 것은 오로지 내 숨소리. 그리고 가끔씩 누가 연주하는지 모를 서투른 솜씨의 피아노 곡까지. 공허로 가득찬 비현실은 이따금씩 내 현실을 따라했는데, 세이렌이 꼭 그것이었다.
“기다렸어.”
연병장에서 권총으로 사격 연습을 하다 들린 노랫소리에 나도 모르게 과녁에서 크게 빗나가 쏘았다.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현실에서 가장 거슬리게 구는 존재가 있다면, 단언컨대 세이렌이다. 워싱턴 주의 작업이 끝나고 로빈과 함께 시애틀의 고래 관찰 보트-규모가 컸으니 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를 탔던 날도 꼭 그러했다. 나를 기다렸다며 그리운 집으로 초대하는 듯한 그 말을 누가 뿌리칠 수 있겠는가. 당시의 나는 뿌리치지 못했고, 비현실들은 그걸 아주 잘 알았다. IUCI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시애틀 앞 바다 속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비현실을 유랑하는 건, 꼭 망망대해를 유랑하는 것과 닮아 나는 종종 현실에 돌아오고 싶어하는 의지를 '닻'에 은유했다. 파도가 일고, 바람이 불어도 그 자리에 꼭 붙어 있을 수 있도록 돕는 것. 나의 닻은 꽤나 사소한 것들로 가득했는데, 이를테면 본가에서 20분 떨어진 거리에 있던 핫도그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라던가, 30분 정도 가야 도착하는 성당. 새로고침이 3초면 되는 레딧이나, 저녁마다 챙겨보는 티비쇼 따위였다. 가장 공을 들였던 건 로빈과 함께 만들었던 유튜브 채널일 것이다. 수입이 나쁘지 않았기에.
지하에 오고 나서는 세상과 단절하고 살았다 해도 다를 바 없었다. 동전을 순간 놓쳐버렸다고 비현실이 무섭도록 침투해오는 걸 보면, 나는 원래 비현실에 속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수없이 걸었던 닻들은 가끔 세이렌이 풀어버렸고, 나는 그때마다 듣고 있던 노래의 볼륨을 높였다.
노랫소리 사이로 파열음이 들린다. 이번에는 적어도 과녁에 적중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일말의 정적 끝에 다시 노래가 들려오자, 나는 지체없이 다시 재장전을 했다.
침투 검사지의 질문은 곱씹을 수록 흥미로운 주제였다. 심리학 검사지의 질문을 본따 만들었다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것으로 수십번 '나'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묻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 인상깊었던 건 이것이었다. 나의 집 찬장에 놓인 컵의 갯수는 몇 개 입니까. IUCI는 내게 무엇을 물어보고 싶었고, 나는 무엇을 그들에게 내보인 것일까.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적은 답을 기억한다. 2개.
가늠자를 통해 과녁을 바라보자 상이 두 개로 맺혔다. 가늠자에 정확히 맞추기 위해 한 쪽 눈을 번갈아 감으면, 그것은 각각 다른 이면의 이미지로 보였다. 나는 비로소 나의 닻을 여러 개의 상으로 나누어 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유랑했던 이유는 내가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여지껏 하나의 컵을 두 가지 이면으로 보고 두 개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본질은 하나였다. 당연하게도.
비현실이 모방하는 현실의 안온은 나의 일상을 닮았다. 수없이 뿌려둔 닻은 결국 하나에서 비롯된 여러가지 이면일 뿐이다. 가늠자에 넣어보고, 그것의 중심을 살피면 나는 비로소 내가 무엇을 그리워했는지 기억한다. 나는, 왜 그렇게 로빈에게 캐롤이라 부르라며 고집을 피웠던가.
다시 한 번 파열음이 들리고, 주변은 다시 적막에 빠진다. 아까보다 조금 더 긴 적막에 나는 왠지모를 해방감을 느낀다. 저릿한 손을 권총에서 떨쳐내고, 안전장치를 채웠다. 과녁은 볼 필요가 없었다. 보나마나 명중일테니.
요새로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나의 침투 검사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