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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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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P/로켓 비즈니스 파트너 2024. 5. 25. 01:44

 

 

 

  로빈의 첫 인상은 사자였다.

 

  그의 부풀어오른 머리카락이 이러저리 휘날릴 때면 제 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숫사자처럼 보였는데, 클럽 사람들은 그걸 보고 종종 로자 (*Robin+Lion의 합성어, Rolion의 의역) 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그 별명에 꽤 동의했다. 귀찮은 일은 피해가는 모습이 꽤나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물론, 로빈에게 말한 적은 없다.

 

 

  캐롤은 바람이 헤집어놓은 그의 갈기를 바라보았다. 로빈이 스스로 제 머리카락을 정돈한 덕분에 그가 붉은 털뭉치가 되는 것은 막았지만, 바다의 짠 습기와 비를 머금은 머리카락은 축축하고 무거워보였다.

 

  캐롤이 묻는다. “들어갈까.”

  “그 말을 기다렸어요.” 로빈이 대답했다.

 

  대체적으로 로빈과 캐롤의 관계는 이러했다. 그 둘은 동업자라고 부르기에는 많은 것을 공유했고,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대체 무슨 사이야?” 라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들은 간단히 대답했다. 비즈니스 파트너.

 

 

  로빈을 처음 만난 건 S대학 오컬트 클럽 신입생 환영식이었지만, 캐롤은 그와 대화다운 대화를 한 달이 지나서야 처음 시도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로빈은 사람들과 인연을 깊게 쌓는 것을 즐기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캐롤은 클럽 활동 안에서도 말수가 적기로 유명했던 탓이었다. 한 달에 4번 모이는 클럽 활동에서 캐롤과 로빈이 그간 나누었던 문장은 다섯 글자를 넘지 않았다. ‘안녕’, 그리고 ‘잘가’. 간간히 ‘오늘 어땠어’. 남이 보았다면 글자 수 세기 놀이를 하냐며 비꼬았을 것이다.

 

  클럽 대표였던 제임스는 도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클럽 환영식을 하고, 한 달 쯤 지날 무렵에 그노시스 잡지¹ 를 들고 왔는데, 그곳에 나온 폐가 체험을 하자며 제안 - 그보다는 강제로 밀어붙인 쪽에 가까웠지, 라며 캐롤은 회상한다. - 했다. 장소는 뉴 저지 주. 레딧에서 종종 “현실에 강림한 지옥”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곳이라 답지않은 정감을 느꼈다.

 

  다른 대학생들은 수많은 리포트와 발표 과제로 고통받고 있을 10월 중순, 클럽 멤버들은 제임스의 낡아빠진 차를 타고 뉴 저지로 향했다. 무개성의 도시라고 알려진 뉴 저지는 할로윈 준비로 바쁜지 거리마다 빛나는 호박으로 가득했다. 완전히 무개성하진 않나 보네. 캐롤은 생각했다. 못생긴 오랜지를 닮은 호박들의 환영을 차창 너머로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어둑하고 암울한 동네가 하나 나왔다.

장장 5시간에 걸친 이동 때문에 다들 차에서 내릴 때마다 욕설을 내뱉었다. 캐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제임스는 대체 이런 차를 어디서 사 온 건지 의자 쿠션이 죄다 죽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무가 무성한 인적 드문 곳에 위치한 이 폐가는 한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는지 먼지가 가득했다. 어떤 이름 모를 부자의 별장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창문이 많고 으리으리했는데, 그 모습이 음산한 기운을 더 내뿜는 것처럼 보였다.

 

  “뉴 저지에 이렇게 큰 별장이 있다니, 신기한데?”

  “이런 곳에 별장을 세우다니. 주인은 제정신이 아니었을거야, 100%.”

 

  시덥잖은 대화가 클럽 회원들 사이에서 오갔다.

 

 

  제임스가 제안한 폐가체험 방법은 꽤나 간단했다. 3인 1조가 되어 폐가 안의 모든 방을 둘러보고 나오는 것이었다. 각 방마다 들어가 인증샷을 찍고 나오면, 미션 클리어. 간단한 룰을 설명하고 나니 시간은 8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어둑해진 거리에 서서 가위바위보를 두어 차례하고 나자 팀은 금새 정해졌다. 캐롤이 속한 팀이 선두였다.

 

  잠겨있는 정문 대신 창문을 타고 들어간 폐가의 첫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캐롤이 보기에도 꽤나 값비싼 것들이 채워졌을 법한 대저택이었다. 거실에는 지금은 다 깨어지고 부서진 장식용 캐비넷이 둘 있었고, 값비싸보이는 소파는 다리가 부서져 주저앉아 있었다. 각 방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각상들도 몇 있었는데,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 시티가 왜 뉴 저지 주를 배경으로 한 건지 이해가 갈 정도였다. 도난을 많이 당했는지 바닥엔 유리창 조각들이 이름 모를 도자기 조각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고, 집 안은 어질러져 있었다. 보안 장치를 달 생각도 하지 않은 주인은 꽤나 호탕한 사람인 것 같았다. 혹은, 이런 것엔 신경도 쓰지 않는 무관심한 사람이거나.

 

  폐가 체험은 순조로웠다. 제임스가 별 영양가 없는 반응을 하며 돌아다니면, 그 뒤를 따라 걷던 크리스틴이 얼빠진 소리하지 말라며 구박했다. 캐롤은 둘의 뒤를 따라다니며 둘을 중재하는 역할이었다.

 

  “그노시스에 실린 것치고는 시시한데?”

  “폐가라기보단 어떤 박물관 같아.”

 

  모든 방을 둘러봐도 ‘오컬트’ 적이라고 말할 법한 것이 없다는 사실에 둘은 실망했다. 5시간이나 차를 타고 왔는데 이게 뭐냐며 불평하는 크리스틴의 불평이 귀를 찔렀다. 30분도 채 되지 않아 방을 모두 둘러본 셋은 다음 팀을 위해 정문을 열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손잡이에 제임스가 고전하고 있을 때, 캐롤은 주방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주인을 잃어버린 주방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며 둘러보던 캐롤은, 주방 바닥에서 미치광이 틀니가 바닥에 떨어진 식기들을 씹고 있는 걸 발견했다. 다른 두 명이 좋아할 만한 소재라는 생각이 든 캐롤은 어깨를 치며 - 제임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 제임스를 불렀다. 등 뒤의 치아는 서로를 부딪히며 귀가 찢어질듯한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제임스.”

  “레이첼, 놀랐잖아. 왜, 뭔데?”

  “주방 좀 봐.”

 

  이런 상황에서도 단어 수 세기 놀이를 하는 거야? 크리스틴의 질린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캐롤은 개의치 않은 듯 주방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

 

  딱딱한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한 주방으로 제임스가 들어갔다. 저 바닥의 식기가 움찔거리는 것 정도는 그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오, 빌어먹을. 나이프가 움직이잖아! 내가 잘못본 거 아니지?”

  “뭐? 나이프가? 이 포크는 갑자기 왜 떨어지는거야?”

  “맙소사. 정말 폐가인 데는 이유가 있었어.”

 

  고작 식기들이 1cm씩 움직이는 걸 보고 호들갑을 떠는 둘을 보며 캐롤은 무의미함을 느꼈다. 인간이 오컬트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미지의 것이기 때문임에 분명했다. 플래시를 터트리며 30장 쯤 사진을 찍고 나서 만족했는지 둘은 주방에서 시선을 떼고 정문으로 나가 그들의 무용담을 전했다.

 

  두 번째 팀이 들어가고, 제임스와 크리스틴은 담배를 피우겠다며 저 숲 어딘가로 들어갔다. 캐롤은 혼자 길가에서 손전등으로 폐가를 비추며 시간을 보냈다. 혼자 비현실을 알아채는 건 머리 아픈 일이었다. 모든 구름의 뒤편은 은빛으로 빛난다던데², 왜 나는 먹구름마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지 따위를 불평해보아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두 번째 팀이 나오기 5분 전, 그 둘은 숲속에서 나왔다. 크리스틴의 립스틱이 번져있었다.

 

 

  두 번째 팀도 주방에서 같은 것을 보았는지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저택을 나오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늦었으니 근처 숙소에서 자고 가자는 제임스의 의견에 동의하며, 그 망할 낡은 차에 하나 둘 올라탔다. 기이한 폐가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성 이야기를 나누던 중, 조용하던 로빈이 문득 말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거기 주방에 조금 이상한 게 있던데요."

  "무슨 말이야?"

  "거기 바닥에, 이빨 같은 게 있더라고요."

 

  차창 사이로 세차게 부는 바람에 로빈의 머리가 뒤집어졌다. 주변의 회원들이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런 것은 하나도 찍히지 않았다며 타박을 했고, 특히나 제임스는 자신이 얼마나 그 지점을 꼼꼼히 살펴봤는지 열변을 토했다. 흥분한 그가 자동차 핸들을 위태롭게 꺾으며 설명하자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그를 진정시켰다. 어지러운 틈 사이에 캐롤은 로빈을 응시했다. 붉은 곱슬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정리하는 그는 사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캐롤은 지금 로빈의 모습을 보면, 간간히 그때를 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로빈은 비현실을 인지하는 본인이 괴짜가 아니라는 것을 긍정하는 존재였다.

 

 

  "이런 날씨엔 따뜻한 커피라도 마셔야겠어요."

  "아니, 코코아지."

 

  그것 외에는 맞는 것이 하나도 없는 파트너였지만.

 

 

-

¹ 신비주의 단체나 오컬트 단체를 소개하는 미국 잡지

²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괴로움 뒤에 기쁨이 있듯이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고 한 줄기의 희망은 있음을 암시하는 미국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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