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폴로지아에 도착한 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피로감을 느꼈다. 지하로 향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짧은 항해였으나, 이유모를 긴장을 항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비로소 땅을 밟아서 풀려버린 것만 같았다. 도착한 이래로는 특출난 것 없는 일상이 지나갔다. 전투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하거나, 간간히 주변인들과의 수다, 그리고 가끔씩 가지는 티타임. 침투 검사지를 제출하기 전까지 나는 비현실 속 안온을 즐겼다.
휴게실에서 한 장 가져온 침투 검사지는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질문이라도 들어가 있길 바랬던 나는 꽤 따분한 검사라는 생각이 들어, 검사지를 들고 배회하던 중 진을 마주했고, 그의 옆에서 또다시 검사지 작성을 시작했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듯 수다를 떨며 문항을 하나씩 채워나갔고, 나는 다시 한 번 마지막 문제를 마주했다. 나는 누구입니까.
‘레이첼 셔먼.’
나는 두 단어를 적어놓고, 한참 그 문항을 바라보았다. 이 마지막 문장에 답하기 위해 그 위의 수 많은 질문에 대한 정답을 채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연, 마지막 문제를 통째로 찢어냈다. 옆에 앉아있던 진의 반응은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알려준 것 같지 않아서.”
프린팅 된 반듯한 질문 한 문장, 그 아래 휘갈기듯 쓴 두 단어. 나는 그 밑에 214로 시작하는 10자리 숫자를 적었다. 당장 같은 미국에 사는 사람도 얼굴보기 힘든데, 하루 꼬박 걸릴 거리에 있는 사람은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언제 또 얼굴 볼 수 있을까 해서.
마지막 문항이 적힌 종이를 네 쪽으로 가볍게 밀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현실로의 복귀다.